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무의 겨울 (문단 편집) == 전개 == 전쟁이 장기화가 되면서 노동력 부족이 심화가 됐고, 특히 농업에서 타격이 심했는데. 1916년부터 [[배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된 독일에서는 [[감자]]가 동이 날 위기에 처했으며, 설상가상으로 흉작으로 인해 수확량이 반으로 떨어지면서 1916년 11월에는 독일 감자의 씨가 거의 말랐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감자의 [[대용 식품]]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루타바가]]였다. 루타바가는 비슷한 부류의 뿌리채소 중에서는 그나마 전분이 많고 무엇보다 [[북극]]권에 가까운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겨울을 버텨낼 정도로 추위에 강한 채소였기 때문이다. 원래 루타바가는 [[돼지]]에게나 먹이는 [[사료]] 작물에 불과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빈민이 아니고서야 굳이 루타바가를 찾지 않았지만, 당시 독일 제국은 그런 배부른 말 할 상황이 아니었다. 독일 정부는 루타바가를 감자처럼 쪄서 먹는 것을 시작으로 온갖 요리를 창작해냈는데 "루타바가 튀김", "루타바가 샐러드", "루타바가 커틀릿", "루타바가 빵"[* 밀가루에 루타바가를 섞어서 구워낸 빵이 아니고 말린 루타바가를 넣고 틀에 모양을 만들어서 찜통에 넣고 쪄낸 괴식. 겉보기에는 빵처럼 보였지만 그냥 '''루타바가 찜'''인 셈. 당대에는 힌덴부르크 빵(Hindenburg-Knolle)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유래는 물론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수.]까지 만들었다. 나중에는 루타바가를 즙을 내어 물기를 짜내 만든 "루타바가 버터"까지 만들어서 "루타바가 빵"에 발라먹었다고 한다. 감자처럼 전분질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응용요리가 가능했던 것. 맛은 이견 없이 밀이나 감자로 만든 것보다 별로였다고 한다. 게다가 제공하는 열량조차 곡물이나 감자에 비하면 상당히 부족했다.[* 루타바가 100그램에서 40kcal 이하가 나온다. 약 80kcal 정도인 감자의 절반 정도, 360kcal 정도인 밀가루의 1/9 정도에 해당하는 허접한 열량이다. 그나마 무(15kcal)보단 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괜히 현대에 들어서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다이어트한다고 먹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다른 식재보다 잘 자라고 재배기간도 짧아서 대량으로 양산이 가능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 1917년부터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나발이건 독일인 모두가 하루 삼시세끼 루타바가로 만든 대용식을 먹는 상황에 놓였다. 겨울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미 독일인들의 원래 주식인 감자나 밀은 1916년 겨울에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1917년 봄, 여름, 가을에도 내내 루타바가로 연명할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 그래도 [[제정 러시아]]를 제외한 협상국들은 주리지는 않을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쟁 말인 1918년 독일군 병사들의 하루 식사는 "루타바가 스튜"와 "루타바가 빵"이었다. 그나마도 전선의 배급 상황은 우선순위가 높았던 것으로, 2선이나 민간에서는 [[톱밥#s-1.1|"톱밥 빵"]]이나 "루타바가 잎" 따위를 먹으며 버텨야 했다. 영양실조로 최대 52만 4천 명이 죽었으며, 면역력 약화 등으로 질병[* 때마침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이 독일에서도 크게 유행하여 28만 7천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으로 죽은 사람까지 셈하면 더 많은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같은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무려 1914년 10월부터 식량이 바닥나기 [[https://ww1.habsburger.net/en/chapters/managing-shortages|시작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기도 [[https://ww1.habsburger.net/en/chapters/hunger-and-protest|했다]].[* 심지어 전쟁 이전 부다페스트 곡물거래소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그것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거래소로 그 수출량 역시 제정 러시아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전쟁으로 수출 판로와 생산이 아작난 것.] 이런 상황은 종전까지 계속되었고 독일 군부가 결국 항복하기로 결정한 것도 미국의 참전이나 마지막 공세의 실패 때문만이 아니라 보급이 붕괴되어 전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루타바가]]는 [[서양]]에서 1차 대전 독일군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1차 대전에서 이 고충을 몸소 겪었던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독일]] 수뇌부는 2차대전에선 식량 보급에 신경을 더 쓰고 나름대로 전쟁이 잘 풀릴 땐 1차대전 때보다 많이 확보한 피지배 영토의 주민들을 쥐어짜서 독일 군민들을 잘 먹였지만 1944년 이후 전황이 급속도로 패망하고 외부 점령지를 상실하면서 44년 말~45년 초부터는 또 식량난을 겪어야 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에는 승전국들 역시 대부분 식량난이 심각했기에 패전국 식량 보급은 우선순위가 낮았다. 그렇게 루타바가의 겨울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도 [[https://de.wikipedia.org/wiki/Hungerwinter_1946/47|재현되었다.]] 이 두 루타바가 겨울의 안 좋은 기억 탓인지 현재까지도 독일에서 루타바가는 그다지 선호받지 못하는 채소라고 한다. 마치 [[스팸]]이 영국에서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